일제의 집권 아래 가족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한 소원과
두려움에 떨며 숨어 있던 그녀의 손목을 잡아끈 미와 유지.

그 순간 나에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언제나 나를 반겨 주던 가족도,
한없이 따뜻했던 나의 집도,
증오스러운 일본인들에 의해 모두 짓밟혀 버렸으므로.

죽음의 그늘을 피해 몸을 숨기고
눈물 흘리며 절망을 경험하던 그때,
나를 강하게 이끌던 커다란 손이 느껴졌다.

“내가 꼭 찾아야 할 사람은 바로 너야. 난 너를 데리러 왔어.”
“나를 찾아…… 왔다는 거야? 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조금 후면 너도 내 말을 이해하게 될 거야.”

마치 오래 전부터 나를 알아 온 듯한 그의 태도와
무언가를 갈구하는 그 어두운 눈빛에 취해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손을 잡고 말았다.

반복되는 윤회 속에 한 여자만을 찾아온 리탄,
그러나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그의 연인 베헤모스.

나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 왔다.
지금의 내가 있는 일본이든,
일본에 억눌려 있는 조선이든,
내가 숨 쉬는 이곳 어딘가에 네가 태어나기를.

때가 되어 너를 찾아갔던 그날,
고통에 괴로워하는 너의 모습을 보며 나는 희열을 느꼈다.
널 구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기에.

“나와 함께 가겠니? 아니면 여기 남겠니?”
“설마…… 일본인이세요?”
“그래. 하지만 무서워할 것 없어. 내가 널 지켜 줄 거니까.”

국적이나 가족 따위 내겐 중요하지 않아.
너와 내가 만났고 내 영혼의 반쪽은 너뿐이라는 것.
그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이지영
필명은 지영공주V.
용띠, 셋째 중 막내.
2004년부터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자’라는 신념으로
열심히 창작의 길을 닦고 있는 여자.
필명을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여자.
깨으른 여자들에서 작가로 활동중이며,
신영미디어 에스프레소, 로망띠끄 시크릿 작가.
그 외 자신의 다음 팬 카페에서 동분서주하고 있는 여자.


▶출간작
〈이태리의 살바체〉, 〈카르멘〉, 〈no pain, no gain〉, 〈비밀〉, 〈매혹, 그 참을 수 없는〉, 〈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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