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의 마지막을 지키려던 장례 지도사, 서유주.

화장장에서 고객의 오빠라 주장하는 남자에게 납치를 당한다.

“날 죽일 거예요?”

“아직까지는 그럴 생각이 없지.”

홍콩 니시콴라이 조직원인 리옌.

그는 유주가 여동생의 죽음에 연루되었다 말하고,

유주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일에 동참한다.

‘완전무결한 피해자’였던 그녀는

모든 일이 해결되고, 자신의 일상을 되찾을 것이라 믿었다.

“아니…… 잠깐, 손 좀…….”

“말 돌리지 말고 그냥 물어봐. 왜 키스했냐고.”

……빌어먹을 고용주께서 갑자기 들이대기 전까지는.

MNEME

1권

유주는 힐끗, 남자를 다시 훔쳐보았다. 그는 여전히 유주를 살피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 검지와 중지에 걸린 담배는 허망하게 타들어 가는 중이었다.

“담배…… 안 태우시나 봐요.”

“아, 이거요.”

그럴 거면 왜 올라왔냐는 뉘앙스로 물은 것이었지만 남자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재떨이에 남은 담배를 비벼 껐다. 흡연이 목적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이상했다. 코롱 향이라니. 흡연자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냄새다.

“가끔은 피우죠. 하지만 평소엔 굳이 건강에 나쁜 짓을 골라 하진 않습니다.”

“……그래요?”

“대신 평소에도 건강에 나쁜 짓을 골라 하는 사람에게 뭔가를 물으러 왔습니다.”

굳이 유주를 찾아왔다는 의미였다.

역시. 찜찜함은 이런 식으로 현실이 되곤 했다. 유주는 담배를 한 모금 빤 뒤 고개를 틀어 길게 연기를 뱉었다. 그리고 남은 담배에 대한 미련 따위 없다는 듯, 무심히 남은 부분을 비벼 껐다.

“물어볼 게 뭔데요?”

겁이 났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정말 사건에 연루된 것이든 아니든, 이런 유의 인간 자체와 얽히는 게 달갑지 않았다. 잘생긴 건 감사하지만 위험한 기색이 다분한 사람은, 실제로 위험한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무엇을 물어보든 최선을 다해 사실만 전하리라. 그런 유주의 앞에 사내가 어떤 사진 한 장을 들이밀었다.

여자의 사진이었다.

2권

“그래. 그럼…… 우리 둘 다 여기까지 하자.”

개자식.

유주는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이별이 처음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비참한 이별은 처음이었다.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분하고, 억울하고…….

리옌이 불쌍해서.

멍청해서.

“그럼…… 우리, 더 할 말은 없는 거야?”

“이런 방식의 작별이 몇 번째인지 셀 수가 없군.”

“그래. 이번엔 입장이 바뀌었지만.”

태연한 척 말하려 했지만 울컥하는 감정 때문에 목소리 끝이 떨렸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직면할 바에야, 앞으로 이와 비슷한 상황을 더 겪게 될 바에야 접는 게 맞았다.

역시 사귀자고 하는 게 아니었어. 그렇게 생각하며 유주는 애써 턱 끝을 조금 더 치켜들었다. 괜히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한 번 가다듬고, 심호흡을 했다. 이 뭐 같은 감정이나 토할 것 같은 메스꺼움은 가라앉지 않았지만 겉모습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겉모습만.

“당신이 이렇게까지 강경하다면, 나도 더는 잡지 않을 거야.”

“그래.”

리옌의 목소리는 화가 난 것 같았다. 아니, 확실히 화가 나 있었다. 도대체 무엇에 화가 났는지 모를 일이었지만 유주는 그마저도 아무것도 아닌 양 웃음으로 흐려 버릴 생각이었다.

조소를 내뱉으며 고개를 트는 그녀의 행동이 얼마나 자연스러웠는지는 모른다. 손이 떨리는 걸, 들킬 것 같아 팔짱을 꼈다.

추운 밤이었다.

“그럼 이제 날 잡지도 말고, 일에 관해 얘기도 하지 마. 이 이상 깊이 들어가지 않을래.”

“좋아. 현명한 선택이야.”

둘 사이에 묵직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건 당연하게도 리옌이었다. 그는 짧은 웃음을 토하며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겼다.

“당신 말마따나 시작조차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성급하게 굴었어.”

냉정한 목소리였다.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한 ‘끝’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