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연연

재미있는 이야기, 기억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역시 보통 계집이 아니었다. 내가 자길 안 뽑을 걸 알고서 그런 것이다……!

그게 바로 그녀가 믿는 구석이었다.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세자는 자신을 간택할 리가 없다는 것이, 지난번 만남 때 알게 된 그녀의 철석같은 믿음이니까.

어차피 내가 안 뽑을 걸 아니까, 굳이 세자빈 되기 싫다는 말은 주상 전하 앞에서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얄미운 것 같으니라고.

“재간택 때 그대들의 손재주를 보고 싶었으나 기회를 놓치고 말았구나. 많은 처자들이 그림이나 자수를 즐긴다 들었는데, 그대들은 어떠하냐?”

아바마마께서 웃으시며 하문하시었다. 규수들이 차례로 대답하며 다도의 분위기가 좋게 무르익었다.

오월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소녀는 손재주는 영 없사오나, 그림은 보는 것도 퍽 좋아하옵고 직접 그리는 것도 좋아하옵니다.”

오월이 촉촉하고 사과처럼 붉은빛이 도는 입술로 아바마마께 조잘조잘 대답하였다.

처음 안 사실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오월이 그림을 좋아하였구나.

그 와중에도 머릿속의 한켠에서는 줄곧 오월이 아까 대답한 내용을 곱씹고 있었다. 용모가 어떠니 눈빛이 어떠니……. 그런 헛소리를 지껄여 놓고도 아주 낯에 철판을 깔고 뻔뻔스러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다니.

그래, 내 용모가 좀 훤칠하기야 하지. 한데 그것을 대놓고 말할 줄이야? 그런 번드르르한 말을 늘어놓는 걸 평생 본 적이 없거늘.

뻔뻔한 것.

널 안 뽑을 거라고 어찌 그리 확신하느냐? 뭘 그리 믿고 그런 대답을 해?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네 맘대로 어디 되나 봐라. 난 너를 간택할 거야.

어쨌든…… 너도 결국 오늘 나의 안해가 되길 원치 않는다는 대답은 아니 하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