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플래시가 터졌다.

차가운 광선은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여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희고 매끄러운 목덜미에 젖은 머리카락이 휘감겨 있었다.
은빛 섬광이 하늘을 찢으며 엄청난 고통이 따랐고,
고통을 겪는 여자의 내면이 울부짖고 있었다.
다시 플래시가 터졌다.
사내의 검은 눈동자에 고통스러운 격정에 휘말린 여자가 있었다.
고통스러운 희열에 거칠게 가슴을 들먹이며 여자는 사내를 보았다.
깊고 서늘한 눈매의 낯선 사내.
순간 여자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엄청난 쾌감과 욕망이 그녀를 강타했다.

사라진 5일간의 기억. 기억속의 낯선 남자.
그가 그녀의 인생으로 스며들어온다.













단발까까에서는 발행일기준 2개월內 로맨스, 일반소설,신간을 정가30%에 매입 합니다.

단발까까에서는 모든 장르의 책을 고가 매입합니다. 또한, 장편기준 15권이상 보내시면 택배비도 무료입니다.

이남희

자신의 가족,
그리고 출판사 담당을 사랑하는 여자.

출간작
은밀한 작업
아윌비백(i'll be back)

“이봐요.”
곧 휘적휘적 걷는 그녀를 따라 잡았다.

“집에 데려다 줄게요.”
비는 그보다도 더 빨리 영린을 따라잡았다.

“집으로 가요.”
그녀가 손을 휘저어 그의 손을 쳐냈다.

“당신 집은 그쪽이 아니야.”
날카로운 은빛이 하늘을 가르고 다섯을 세기도 전에 뇌성이 울렸다. 그녀가 몸을 획 돌려 그를 쏘아보았다.
다시 번개가 하늘을 위에서 아래로 찢었다. 은빛으로 드러난 영린의 눈빛에는 극한의 분노가 어려 있었다. 스위치가 내려진 눈빛보다는 차라리 이쪽이 나을지도 몰랐다.

“왜 영채야?”
영린의 음성을 뇌성이 숨겼다.

“뭐라고요?”
이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눈 뜨기도 쉽지 않았다. 비는 위에서 아래로 수직낙하 하지 않았다. 뺨을 휘갈기듯 비스듬히 내려 사람 꼴이 참 우습게 변하고 있었다. 그건 영린도 마찬가지였다.

거기다가 영린은 느닷없이 폭풍분노를 그를 향해 쏟아냈다.
지금 내가 뭐하는 짓인지.

이훈은 여기가 어디고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하는 정신이 유체를 이탈하는 현상을 겪었다.

에라, 모르겠다.
넋이 나가든 얼이 빠지든 내 알바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몸을 획 돌리는데 이번에는 영린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왜 하필 영채냐고!”
영린이 울부짖듯이 말했다.

“영채?”

“세상에 여자가 영채 밖에 없다고 해도 영채는 안 되는 거였어.”

순간 이훈은 그녀의 정신도 육체를 이탈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기에다 대고 난 권도헌이 아니다, 어딜 봐서 내가 권도헌이냐, 자세히 봐라, 권도헌은 나보다 적어도 10㎝는 작지 않느냐, 곱상하게 생긴 권도헌하고 나와 비슷한 구석도 없다, 라고 말하는 것도 부질없게 느껴졌다.

비는 사정없이 내리고 간간히 구색을 맞춰 번개와 천둥이 대지를 뒤흔드는 이 와중에 그걸 따져 뭣하겠는가 싶었다.

“영채는 안 되는 거였다고, 알아?”

그리고 이훈은 사람의 목소리가 이처럼 비감에 잠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에야
깨달았다. 영린에게 그토록 아픈 일이었던 것이다.

“영채라서 미안해요.”
그는 영린을 달랬다.

“그러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죠?”

“영채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어.”

“유영린 씨.”

“영채가 어떤 짓을 해도 난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고. 모든 걸 가로채는 영채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증오하지 않으려고 죽을 만큼 노력했는데, 너마저 나를!”

“미안해요, 그러니 제발 돌아가자고요.”

이훈은 짜증을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만 했다.

사실 이훈은 불과 몇 분 전에 오랜 기억 속의 여자아이를 놔버리기로 했다.
그에게 영린은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랬다면 꽤 괜찮은 추억으로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감상에 젖게 해 주었을 것이다. 만나지 말아야할 사람을 만나 이런 곤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역시 충동은 결과가 좋지 않았다.
이대로 혼자 퇴장을 하면 좋겠지만 정신이 육체를 완전히 이탈한 것 같은 영린을 이곳에 두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만일 어떤 사고라도 당한다면 그녀를 제일 마지막 만났던 자신이 모든 덤터기를 쓸지도 몰랐다. 아니, 상상은 그보다 더 극단적으로 치달았다. 싸늘한 변사체와 어딘가에 무심코 흘렸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흔적들…….

젠장, 나도 미쳐가는구나.

아마도 그건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게 만드는 빌어먹을 비와 번개, 그리고 천둥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참해. 너 진짜 최악이야.”

“유영린 씨, 당신 사정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제발 정신줄 꼭 잡고 집으로 얌전히 돌아가자고요!”

빗소리와 간간이 들리는 뇌성 때문에 이훈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야만했다.

“왜 영채냐고!”

“아, 미안하다고. 그게 영채라서 미안하다고 했잖아!”
급기야 인내가 바닥을 쳤다.

“그러니까 제발 좀 집으로 돌아가자…… 흡!”
순식간에 이훈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영린이 그에게 입술을 밀어붙였다. 황당함을 넘어 경악에 당도했다.

사방이 어둠이었다. 어둠보다 더 빽빽한 비가 강하게 부딪쳐 왔다 이따금 번개가 하늘을 찢어 현실성을 부여하지 않았다면 악몽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악몽 그 이상의 설명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 여자가 정말!”
이훈은 그녀를 거칠게 떼어냈다.

“당신 미쳤어?”
잔뜩 벼린 채 쏘아보았다.

“안 되는 거였어?”
영린이 이까지 딱딱 부딪치며 덜덜 떨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녀를 밀쳐내고 이훈은 몸을 돌려 걸었다.

“젠장, 젠장, 젠장!”
곧장 달려가 그대로 차를 몰 것이다. 짐은 그 빌어먹을 권도헌에게 챙겨오라고 전화를
하면 된다.

아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출사를 나올 때 챙겨온 아무렇게나 뒹굴기 편한 옷가지는 버려도 무방했고, 92만 화소의 LCD 크기가 3.2인치인 니콘은 좀 아까웠지만 여기서 더 이상 미친 짓을 하지 않을 대가치고는 크지 않았다.
그에게 득달같이 달려와 몰아치는 비와 싸우듯 터벅터벅 먼 일가인 노부인 집이라 여겨지는 곳을 향해 걷는데 자꾸만 뒷덜미가 당겼다.

“아우, 젠장. 미쳐!”
결국 이훈은 이를 갈고야 말았다.

“나도 미쳤어, 미쳤다고!”
태풍이 오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출사를 할 때 날씨 확인은 필수였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언제나 이렇게 대형 사고를 낳는다. 사실 뭐에 홀린 것처럼 충동이 그를 휩쓸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우.”
이훈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아 젠장!”
그러다가 다시 몸을 돌려 차를 주차해 놓은 쪽으로 걸어가다가 재차 투덜거리며 그녀 쪽으로 몸을 획 돌려 걸었다.

영린이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이까지 부딪치며 떨고 있었다. 이훈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체온이 떨어지면 위험했다. 육체를 이탈한 정신이 되돌아오게 하려면 적어도 살아 있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번개가 하늘을 갈랐다. 곧 뇌성도 뒤따를 것이다.
번개가 하늘을 가를 때 집의 형상을 한 검은 물체 하나를 포착했다. 뭐하는 건물인지 몰랐다. 불빛이 없는 것으로 보아 주거의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은 아닌 듯했다. 그 건물이 어떤 목적으로 지어졌든 일단 비는 피하고 봐야 했다.

“젠장, 후회할지도 몰라.”
이훈은 영린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아니, 벌써 후회하고 있다고.”
투덜거리는 이훈에게 영린이 아무런 반항 없이 딸려왔다.

“여기 내려 온 것 자체가 제 정신이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