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녀가 잊으려고 하는 것은 그가 아니라,
그를 사랑했던 자기 자신일지도 몰랐다.

사랑이라는 건 원래 그렇게 이기적인 이유를 수반했다. 사랑은 행복하지만 반드시 아파야만 한다. 아 픈만큼 그렇게 행복해질 수는 없지만, 행복한 만큼 그렇게 아파야만 한다. 그와 함께했던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함께라는 이유만으로도 행복한 수진이었으니까.

하늘이 허락하지 않는 사랑.
그리고 하늘이 허락해 줄 수 없는 사랑.
어쩌면 평생 다신 없을지도 모르는 사랑.
안녕…….

서민영 지음



출 간 작
「여자나이 서른 셋, 결혼은 늦었고 죽기엔 이르다.」
「불같이 차갑게 얼음같이 뜨겁게」
「그 남자의 겨울」
「햇살 한 조각」
「솔로는 물에 빠져도 구해줄 사람이 없다.」
「감각의 신드롬」

출 간 예 정 작
「슈가파우더」
「그들만의 천국」
「Back Stage」

분명히 알게 된 거야. 아니면 이렇게 갑자기 보내려고 할 리가 없어.
그게 아니라면 보낼 이유가 없어.

받아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사랑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서은재는 이수진의 마음을 알게 된 거야. 그래서 떠나야 하는 거야.
추악한 마음을 숨긴 채 더 이상 그의 곁에 있을 수 없는 거야.
서은재가 알아버렸고, 자신은 미국으로 떠나야 하고. 서은재는 결혼을 할 거고, 자신은 그걸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죽음이나 이별이 슬픈 까닭은
우리가 그 사람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줄 수 없기 때문이야.
잘해주든, 못해주든, 떠나 버린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지.
사랑하는 사람이 내 손길이 닿지 못하는 곳에 있다는 사실……
그 때문에 우리는 슬픈 거야…….

어느 책에서 읽었던 글이 떠오르자 수진은 주체하지 못하고 다시 주저앉은 채로 울어버렸다. 이제 더 이상 은재는 수진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곳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밥을 해줄 수도 와이셔츠를 다려주고 넥타이를 매줄 수도 없었다. 함께 마주보며 웃는 일은 이제 정말 불가능할 것이다.
문 밖에서 문에 기대어 서 있는 은재도 그녀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어금니를 악다물었다. 입을 틀어막고 숨을 죽인 채 애써 눈물을 삼키려 노력하는 은재도 그녀만큼이나 아프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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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있어야 하는 이유라도 있는 거야?”
“…….”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그런 거라면 다시 생각해 보자. 꼭 한국에 있어야 할 이유, 있어?”
“…….”
“이수진.”
“이유가 꼭 있어야 해?”
수진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 이유를…… 정말 몰라?’
순간 은재의 심장이 욱신거렸지만, 은재는 저려오는 심장을 외면했다.
‘알기 때문에 곁에 둘 수 없어.’
“없으면 미국으로 가. 미국에서 네가 100% 완성된다고 가정할 때, 네가 여기에 남아 있다면 넌 30%밖에 완성되지 못해.”
“난 100%까지 완성할 생각 없어!”
“어린애 같은 소리 하지 마. 졸업하고 가면 늦어.”
“상관없어.”
“이수진, 고집 부리지 마.”
“너야말로 고집 부리지 마, 서은재!”

기어코 수진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고 겨우겨우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모진 사람. 나쁜 사람. 둔한 사람. 잔인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그럼에도 수진은 그를 미워할 수 없는 자신이 한심했다. 지금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 미국으로 보내려는 그가 미웠지만, 진짜 미운 게 아니라 서운한 거였다.
수진의 눈물을 보며 은재는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흔들리면 안 되는 일이었다. 은재는 그녀의 눈물을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울지 말라고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서은재에게 허락되지 않은 일이었다. 수진의 엄마인 외할머니의 얼굴과 수진의 큰언니인 자신의 엄마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은재는 어쩔 수 없이 잔인한 방법을 써야만 했다.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잔인하고 비겁하게 이 방법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진은 은재의 시선을 피하며 울음 가득한 목소리를 냈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낼 수 있는 용기라고 생각했다.

“내 인생이야. 허송세월을 보내든 재능을 발휘하든…… 내 인생이라고.”
“……그래서 미국에 가지 않겠다고?”
“…….”
“여기에 남아서 지금처럼 내 뒷바라지나 계속하겠다고?”
“…….”
“이수진, 나 좋아하니?”
“…….”

“내가 남자로 보여?”
“…….”

대답 없는 수진의 눈이 은재에게 향했다. 상처와 아픔, 슬픔을 고스란히 담은 눈이 은재를 원망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서은재,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