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까까에서는 모든 장르의 책을 고가 매입합니다. 또한, 장편기준 15권이상 보내시면 택배비도 무료입니다.">그 남자, 박진후.

“안녕하세요. 이유정입니다. 기쁠 유, 머무를 정, ‘기쁨이 머무르는 곳’이라는 좋은 이름이랍니다. 기쁨이 보이시나요?”

10년째 뛰지 않던 그의 심장이 순간 쿵쿵 뛰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갑자기 왜 심장이 뛰는지, 왜 이토록 떨리는지, 왜 이토록 눈이 부신 건지.
내내 겨울이었던 그의 마음에 순간 바람이 살랑였다. 그도 모르는 새 그에게 살그머니 봄이 다가오는 모양이다.


그 여자, 이유정.

햇살처럼 해사한 그의 웃음이 유정의 가슴에 또 한 번 돌을 던지고 있었다. 해사한 그의 웃음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이 좋았다. 더불어 그의 웃음이 언제나 자신을 향했으면 좋겠다는 욕심마저 생겼다.

“‘이유정’이라는 여자가 좋아. 그냥 당신을 보고 싶어. 그러니까 등 돌리지 말아요. 당신 등을 보고 싶지 않아. 가슴 시린 거, 이제 싫다. 온기를 느끼고 싶어. 당신이 내게 주던 그 온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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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경(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되기를 바랐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늘만큼만 행복하기를 바란다.
현실에 만족하는 하루가 쌓여 행복한 내일이 온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오늘도 행복하기를…….

silver7533@korea.com

[출간작]

이혼후... 愛
그대 뒷모습을 사랑해요
여우, 곰을 만나다
Dr. O
불꽃 The Flame
어린 부부
사랑 더하기
임수진, 서른둘에 사랑을 만나다
미안 愛, 사랑 哀
개과천선 Mr. 구
오만한 그녀 - 가시꽃
One Night

유정은 소주 석 잔에 벌써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아무리 술이 약하다 한들 술 석 잔에 헛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여기서 한 잔을 더 마신다면 취하겠지만 아직 석 잔을 마셨으니 아무렇지 않은 유정이었다. 그렇다면 아마 자신 앞에 보이는 사람은 자신이 그토록 보고팠던 박진후가 맞을 것이다.

“어? 박진후 씨?”

진후는 유정이 있는 테이블을 지나치려는 순간 유정이 일어나 그의 팔을 건드리자 그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 서고 말았다. 손가락이 닿았을 뿐이었다. 그의 팔꿈치를 건드린 그 손가락.

그러나 유정의 손가락이 닿은 건 그의 팔꿈치만이 아니었다. 유정은 그 순간에 그의 마음까지 한숨에 다다른 것이다. 아니라고, 유정에 대한 마음은 그저 스쳐가는 마음인 거라고 스스로를 속이려던 그의 심장이 그 순간 진심을 내보였다. 더는 속일 수 없다고, 그녀를 향해 뛰고 있는 건 새로운 사랑에 대한 갈망이라고, ‘이유정’이라는 여자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라는 걸 그는 이제 인정하기로 했다.

“보고 싶었어요.”

술 때문이었을까? 유정은 내내 마음에 담았던 말을 솔직하게 내뱉고 말았다. 그로 인해 어쩌면 많은 후회를 하게 될지라도 지금 이 순간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싶지 않았다.
유정의 말에 놀란 건 진후뿐 아니었다. 윤식은 물론 기훈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유정이 솔직한 성격이긴 하지만 남자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세상에 살다보니 이유정이 남자에게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다니. 이건 어메이징이었다. 그것도 저렇게 유정을 보는 눈이 냉랭한 남자에게 이유정이 마음을 담아 고백을 하다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적어도 유정을 품어 줄 남자는 세상 그 누구보다 따뜻한 남자일 거라는 생각을 하던 기훈이었다.

그런데 유정을 바라보는 남자는 냉정함이 뚝뚝 묻어나고 있었다. 실제로 유정이 저런 고백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남자에게서는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 유정이 오늘 마음을 다쳐 술을 진탕 마시고 또다시 마포대교를 건너야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기훈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많이 취했나 봅니다.”

진후는 유정의 말에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를 감춘 채 아무렇지 않은 듯 답했다.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는 것과 별개로 유정의 고백은 그의 심장을 마구 들뜨게 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받아들일 순 없었다. 그래선 안 되는 거라는 걸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러 더 차갑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자마자 유정의 얼굴에 슬픔이 담기자 그 역시 마음이 아팠다. 손을 뻗어 그 얼굴에 담긴 슬픔을 걷어내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래선 안 된다. 결단코 안 된다. 진후는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았다.

유정은 풀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한 치의 틈도 없이 거절당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니, 남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게 처음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첫 마음은 상대가 없는 갈 곳 없는 마음인 모양이다.

“그럴 줄 알았어요. 저는 그동안 박진후 씨가 많이 보고 싶었는데 아마 박진후 씨는 아니었겠죠? 아, 창피해라. 남자한테 이런 말 한 게 처음인데…… 많이 부끄럽네요.”

혼잣말인 듯 작게 속삭였지만 기훈도 진후도 그리고 윤식마저 모두 들었다. 그리고 셋 모두의 표정은 다 제각각이었다. 기훈은 마음을 다친 유정이 걱정된 듯했고, 윤식은 당당하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여자가 궁금한 듯 보였고, 진후는 너무도 여러 가지의 감정들이 섞인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고개를 푹 숙인 유정에겐 그들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이럴 땐 역시 소주가 최고겠죠?”

그리고 기훈이 말릴 새도 없이 유정은 초록색 병을 기울여 잔을 채웠고 이윽고 한입에 그 술을 털어 넣었다.

“야, 이유정. 안 돼. 안 된다니까.”

그러나 기훈은 이번에도 늦고 말았다. 유정이 소주 넉 잔을 마신 것이다. 결국 그는 또다시 마포대교를 유정을 업고 걸어가야 할 모양이다. 평상시 누구보다 반듯한 애가 대체 주사는 왜 저 모양인 거냐고. 아, 정말 기훈이 유정을 끝까지 사랑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 바로 이 주사였던 것이다. 제법 말이 통하는 친구에서 자꾸만 여자로 보이던 유정이었지만 자신의 고백을 거절하고 미안하다며 둘이서 먹었던 술자리, 그리고 드디어 보게 된 이유정의 실체. 기훈은 자신의 고백을 거절한 유정이 그날 진심으로 고마웠다.

진후는 아무렇지 않은 척 윤식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나 그의 귀는 뒤에 앉아 있는 유정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녀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들린다 싶더니 이내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진후가 서둘러 뒤를 돌아보니 유정이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고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익숙하다는 듯, 그러나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이유정, 이유정. 괜찮아?”

“괜찮아. 나 괜찮아.”

‘아니, 괜찮지 않아. 나 아파. 내 가슴이 아파. 미어진다는 말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아. 이런 게 미어지는 건가 봐. 막 가슴을 누군가 쥐어뜯는 것 같아. 나 아프다.’

그러나 그 말은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다.

“말이라도 못 하면 밉지나 않지. 너 오늘은 택시 타고 가. 분명히 말했어.”

“그래. 언제는 우리가 택시 안 탔니?”

“그래, 타기야 탔지. 중간에 내리기 없다. 마포대교에서 내리지 않는다고 약속해.”

“기훈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마포대교가 나를 부르는 걸?”

“야, 너 설마 오늘도 그럴 건 아니지. 제발 유정아, 나 좀 살려 주라. 나 며칠 밤새서 힘들어. 오늘은 너 업고 마포대교 못 건넌다니까.”

“알았어. 그럼 나 혼자 갈게.”

언제나 똑같았다. 기훈이 말리면 유정은 괜찮다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어디에 있든 마포대교를 향해 걸어갔다. 정말 기훈은 마포대교라면 이가 갈릴 정도로 싫었다. 그러나 오늘도 기훈은 마포대교를 걸어야 할 모양이다.
기훈은 앞서 걷던 유정이 비틀거리자 서둘러 유정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나 이내 귀찮다는 듯 유정은 그의 팔을 쳐냈다.

“나 안 취했어. 걱정하지 마.”

“그래. 너 안 취했어. 그렇지만 내가 신사된 도리로 에스코트하는 거야.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숙녀를 혼자 집에 가게 할 수 있겠니. 사랑하는 친구야, 나 그런 사람 아니다. 그냥 우리 손잡고 가자. 우린 친한 친구 사이잖아.”

“그럴까, 그럼. 우린 친구 사이.”

진후는 나란히 손을 잡고 걸어가는 유정과 남자를 보며 자꾸만 이마가 찌푸려졌다. 유정의 고백을 매몰차게 거절한 건 자신이면서 왠지 모르게 그녀가 미웠다. 보고 싶었다면서 다른 남자의 손을 잡고 사라지는 유정이 미웠다.

그녀는 며칠 동안 자신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든 것도 모자라 이렇게 불쑥 현실 속에 나타나 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았다. 겨우 가슴의 소리에 귀 막고 있는 자신에게 진심을 깨닫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 남자가 말한 친한 친구라는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친구. 친구. 친구? 저렇게 고운 여자를 어떤 바보 같은 녀석이 친구로만 두겠어?

윤식이 술잔을 건네는 순간, 진후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서고 말았다.